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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가벼운 생각들 2023. 3. 26. 11:58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매일 수시로 한다.

    20대에 겪은 가족의 죽음부터 시작해서 30대 중반으로 달려가는 지금까지 겪었던 주변의 죽음들이 내게 큰 영향을 줬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대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산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눈앞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사고를 목격한 것도 아니었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 확실하다면 당장 하고 싶은 일, 누군가에게 뱉고 싶은 말, 잠시라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다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은 없다. 비교적 주변 사람들에 비해 꽤 충동적인 편이긴 하다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에 좀 더 충실해졌을 뿐.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그만큼 지금의 시간을 감사히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엄마와의 관계였다. 나는 엄마가 느낄 남편의 상실감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참아내는 모습에서 그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는 삶(살아감) 대해 정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녀에게 동반될 수 있는(흔히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슬픈 감정들과 외로움, 우울증, 인생의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는 일을 같이 하던 파트너였기에 우울감에 더 쉽게 빠져들 것으로 보였다.

    아빠가 아플 때만 해도 나는 가족들과 속 깊은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막상 부모 한 쪽을 여의고 나니 생전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아빠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으며 대화도 편하게 하지 못했다. 분명 아빠는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했겠지만 사춘기부터 멀어진 딸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는지 모르셨으리라. 이런 서먹한 관계로 그와의 생의 인연이 다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엄마와 대화를 깊게 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녀에게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고자 하면서 평생 가져가야 할 후회를 남은 가족에게서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나는 아빠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대해,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지금도 그 주제에 대해서 꺼리지 않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와의 대화 주제는 사별로 시작했지만 점점 살아내는 삶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다. 각자 살아내고 있는 일상을 들려주고 들어주면서, 나는 엄마와 딸이 친구가 되기 시작한다는 30대가 넘고 3년이 더 지났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아침과 저녁, 서로의 생사와 기분을 가볍게 확인하고 걱정해 주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꽤 오랜 햇수 동안 만난 연인들과 이별하면서 스스로와 친구들에게 쏟는 애정이 더 단단해지기도 했다. 죽음이든, 연인과의 이별이든 애정 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두려움이 관계를 끊지 않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보고 싶었지만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과 만나고, 내가 없어지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릴 엄마에게 매일 안부와 사랑을 전하고,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숨이 붙어있는 동안 하루라도 건강하고 예뻐지게 가꾸는 습관에, 무언가 보고 듣고 읽고 느끼려는 순간과 기회에 집중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모든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감정을 글로 남겨둔다.

    하루하루 바쁘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다는 증거로,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어린 날의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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